中 ‘파나마항 매각’ 딜레마…”성사돼도 무산돼도 중국이 패배자”

홍콩기업 CK허치슨이 보유한 파나마 발보아 항구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中당국, 홍콩기업 CK허치슨 연일 압박…’친기업’ 신호와 상반돼 신뢰↓

美블랙록에 매각되면 거점항 대거 잃어 ‘해양강국’ 구상 차질

계약 무산은 ‘중국이 파나마운하 운영’ 트럼프 주장에 힘 싣는 격

 홍콩기업 CK허치슨홀딩스가 파나마 항구 등의 운영권을 미국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한 거래와 관련해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중국이 ‘패자’가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당국은 해당 거래가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CK허치슨을 연일 비판하며 ‘계약 자진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의 압박에 실제로 매각이 무산될 경우 최근 당국이 힘을 싣는 ‘친기업’ 메시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면서 홍콩이나 외국기업들의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미국 패권에 굴하지 말라”…中, 연일 ‘파나마운하 매각’ 때리기

중국 당국은 관변매체 논평을 통한 ‘간접적’ 방식에 이어 직접 반독점 조사 카드를 꺼내 들며 CK허치슨과 블랙록 컨소시엄 간의 거래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13일 처음 파나마 항구 매각 거래 관련 논평을 실은 홍콩 관변매체 타쿵파오(大公報)는 지난달 30일과 31일에도 정·재계 인사들의 의견을 인용해 ‘미국의 패권에 굴하지 말고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국의 반독점 조사를 정당화하는 기사를 냈다.

지난달 28일에는 중국의 시장규제·감독 기관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이 파나마 항구 매각 거래에 대한 반독점 조사 방침을 밝혔다. 이후 CK허치슨은 당초 이달 2일로 예상됐던 최종 계약 체결을 미룬 상태다.

파나마 운하에 있는 항구 5곳 가운데 발보아·크리스토발 등 2곳을 운영해온 CK허치슨은 지난달 4일 파나마 항구 운영권을 포함해 중국·홍콩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23개국 43개 항만사업 부문 지분을 228억 달러(약 33조5천억원)에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한다고 발표하고 우선협상 중이었다.

CK허치슨은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 일가의 주력 기업으로 중국 당국과는 상관이 없는 민간 기업이다. 애초에 영국계 기업인 허치슨왐포아가 2015년 리카싱의 청쿵(CK·長江)그룹과 합병하며 생긴 기업으로 본사는 케이맨제도에 있으며 주요 주주도 리카싱 가문(지분 약 30% 보유)과 블랙록(5%), 뱅가드그룹(2.78%) 등이다. 매출에서 중국 본토와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도 10%대에 그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며 운하 통제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CK허치슨이 보유한 파나마 운하 항구는 미·중 간에 새로운 충돌 지점으로 부각됐고, 매각 발표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논란은 중국 당국의 개입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 中, 해외 거점항 대거 잃을 위기 “최근 20년간 확보 항구 운영권 반토막”

중국 당국이 반독점 조사 카드까지 꺼내며 ‘CK허치슨 때리기’에 나선 것은 이번 매각으로 중국 및 홍콩 기업이 운영해 당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외 항구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7월 “해양강국 건설”을 중요 국가 의제로 강조한 이후로 중국은 세계 곳곳의 주요 해상 요충지에 지분 투자 등으로 거점항구를 확보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CFR)는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총 129개 항구 프로젝트의 지분 또는 운영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15개 항구는 중국인이 대부분 소유해 중국 해군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CK허치슨이 보유한 해외 항구 운영권도 포함돼있는데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43개 항구의 운영권을 미국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컨소시엄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미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지난 20년간 중국 기업들은 전 세계 95개 항구에 지분을 투자했고, 이는 중국의 무역을 용이하게 하고 빠르게 확장하는 중국 해군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중국이 소유한 항구 운영권이 거의 절반으로 줄게 된다”고 지적했다.

AFP통신도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거래가 중국 입장에서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상하이 국제해운연구센터(SISI)의 항만개발 연구원 셰원칭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거래의 “전례 없는 규모”가 중국 해운산업에 충격을 줬다면서 항구 소유자가 바뀔 경우 “중국 해운사들이 추가 비용을 물거나 대기 순서 상의 차별 등 불이익을 받을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파나마 항구 매각 무산되면 中 ‘신뢰’ 타격 등 역풍

하지만 중국이 이번 매각 계약을 무산시킬 경우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K허치슨이 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계약을 철회할 경우 ‘파나마 운하가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격이 된다. 이는 또한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양국 간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

아울러 최근 중국이 대외개방 의지를 강조하며 외국·민영기업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신호를 발신하는 것과도 상반되는 결과다.

중국은 부동산 위기와 국내 소비 약화, 외국인 투자 감소, 미국과의 ‘관세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최고 지도부가 직접 나서서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글로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을 직접 만나 ‘중국에 안심하고 투자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블룸버그통신은 1일 기사에서 그 몇시간 뒤 중국 당국이 파나마 항구 매각 거래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나섰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압박이 “지난해 외국인 투자가 수십 년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자국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려는 시 주석의 노력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독립 정치학자 천다오인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이 거래가 취소되면 전 세계가 중국 정부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며 “이 거래는 성사되든 안 되든 중국이 패배자”라고 지적했다.

주홍콩·마카오 미국 총영사 출신인 커트 통 아시아그룹 파트너도 “파나마 항구 문제로 홍콩이 자산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하기에 좋은 곳인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며 “홍콩에서 영업하는 외국 비즈니스 커뮤니티는 이 문제를 매우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AFP에 말했다.

중국 당국이 국가안보법과 연관 지어 이번 매각 거래에 제동을 걸 경우 그 여파는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타쿵파오는 이번 매각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격하게 비난하고 있다.

홍콩은 지난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이듬해 중국의 국가보안법 제정 등의 영향으로 외국계 자본과 인력 유출을 겪으며 ‘아시아 금융허브’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왕샹웨이 홍콩침례대 교수는 “중국과 홍콩 중에 한쪽이 국가안보법을 발동해 거래를 막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데 그것은 핵 옵션과 같다. 중국이 그렇게 한다면 홍콩에 대한 기업의 신뢰를 파괴할 것”이라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말했다.

[그래픽] 파나마 운하 통제권
[그래픽] 파나마 운하 통제권(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미 파나마를 찾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2일(현지시간) 파나마 대통령을 면담하고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실제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통제·운영은 주권 사항으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맞서 미국과의 견해차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0eun@yna.co.kr X(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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