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왜 좌파성향’진보담론의 산실’에서 책을 냈을까

19일부터 온라인 예약 판매에 들어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 - 한동훈의 선택'. 메디치 미디어 제공

‘국민이 먼저입니다-한동훈의 선택’ 출간… 정치 재개
여권 일각,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겨냥한 색깔론 공세

“역시 한동훈”이라고 해야 할까요. ‘국민이 먼저입니다-한동훈의 선택’이란 저서를 오는 26일 출간하며 정치 일선에 복귀할 예정인데, 책이 나오기 전부터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19일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구매 인증 댓글이 줄을 잇기도 하고, 저자 소개에 21년간의 검사 이력이 빠져 있다는 소소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보수 몰락의 주범이 누군데, 지금 등판하느냐”는 친윤석열계의 강한 견제구도 날아옵니다. 다소 떨어진 대선 주자 지지율에도 이슈 주도권만큼은 여전한 셈입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출판사 논란입니다. 한 전 대표 책을 출간한 ‘메디치미디어’에 대해 강성 보수층 일각에서 ‘좌빨 출판사’라는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는 겁니다. 출판사 대표의 약력 등을 문제 삼으면서 한 전 대표를 배신자로 지칭한 지라시가 정치권에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출판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 자서전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문 전 대통령 자서전은 다른 출판사에서 냈거든요.

친한계는 즉각 반박에 나섰습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1950년대에 미국에서 있었던 매카시 선풍이 떠오른다”며 “대한민국이 왜 이리 돼가는 건지 쓴웃음만 나온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출판사가 민주당 인사들의 책을 많이 낸 건 맞지만,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 여권 정치인들의 책도 낸 적이 있다는 겁니다. 당장 보수 유권자 영향이 큰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대한 다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진보담론의 산실’ 메디치미디어

메디치미디어 출간 도서. 메디치미디어 홈페이지 캡처

메디치미디어 출간 도서. 메디치미디어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기자도 출판사를 보고 의문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정치권에서 ‘메디치미디어’는 진보적 정치 지향으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몰라 따져 봤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 정치·사회 섹션에 소개된 전·현직 국회의원의 책만 모아, 당적을 분류했습니다. 28권의 책이 있었는데요.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정의당 출신 인사의 책이 26권, 국민의힘 출신은 2권입니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드세진 현 보수 정치권 상황에선 트집을 잡는 이들이 있을 법도 합니다.

메디치미디어는 다른 출판사들과 달리 정치적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 이 출판사가 주최했던 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힘의 역전’이란 주제였는데요. 과거 보수 우위였던 한국이 이제는 정치·사회·문화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진보 우위로 재편됐다는, 또는 재편 중이라는 담론이 주를 이뤘습니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언론 접촉을 삼가던 당시 정권의 핵심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연사로 나서기도 했는데, 누군가 “메디치가 세긴 세네”라고 읊조렸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라, 그 세미나가 ‘진보의 승리 세리머니’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진보담론을 말할 수 있고, 진일보될 사회를 그려볼 수 있는 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을 창작과비평(창비) 이후 ‘새로운 진보담론의 산실’이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크게 무리는 없을 거 같습니다.

‘빈약한’ 보수 정치권의 출판 문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그렇다면 한 전 대표는 왜 진보담론의 산실에서 책을 냈을까요. 가장 먼저 보수 정치권의 빈약한 출판 문화를 떼어놓고 설명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출판계 자체가 진보 성향이 강해, ‘보수 출판사’라고 언급할 만한 곳이 드뭅니다.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설립한 ‘기파랑’ 정도가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데, 현역 정치인들의 책을 적극적으로 출간하진 않습니다. 최근 한동훈 비대위에 몸담았던 박은식 전 비대위원이 ‘당신을 설득하고 싶습니다’란 책을 펴낸 정도이고, 현직 국회의원의 책은 없습니다.

한 전 대표 측 인사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한국일보 질의에 “우리 입장에선 어디가 책을 잘 만들어서 많이 파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답변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책을 잘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이 분야에서 메디치미디어는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디자인해 홍보하는 능력이 많은 진보 정치인들의 책으로 검증됐기 때문입니다.

한 전 대표는 출간 이후 북콘서트 형식으로 전국을 순회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메디치미디어가 쌓아온 노하우도 적잖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메디치미디어는 출판 콘텐츠를 바탕으로 세미나와 북콘서트 등 오프라인 활동,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활동까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출판사들도 유튜브 구독자가 3만 명을 넘는 경우가 드문데, 메디치미디어는 22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출판사 선택에 중도외연 확장의 의미’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출판사가 저자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며 “그쪽(진보) 진영에 대한 홍보 등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출판사까지 비난의 소재가 되는 걸 보면서, 2012년 종합편성채널(종편)이 개국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보수 일간지가 주축이 됐던 종편의 출연 금지를 당론으로 정했었는데요. 그만큼 여론전에서 밀려 그해 대선 패배의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게 교훈이 됐을까요. 이후 민주당은 최소한 정치권에선 ‘힘의 역전’을 이뤄낸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보수 정치는 스스로 설 자리를 좁혀 왔습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은 배제하고 절대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그렇게 쌓인 편협함이, 이번 해프닝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당의 목표는 선거 승리, 정권 창출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이러고도 이길 수 있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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