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흑인·여성 투표 얼마나 이끌어낼지가 관건”… 미국 정치·역사학자 10인 설문

카멀라 해리스(오른쪽)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

‘트럼프 피격’ 상쇄한 ‘바이든 사퇴’

대통령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28일 기준 선거 판세로 오는 11월 5일(대선)의 결과를 점치는 것은 무리다.

일주일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로 집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바뀌었고, 그 결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 후보)이 앞서가던 레이스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각각 78세(트럼프)와 82세(바이든)였던 두 백인 남성과 달리, 민주당 새 후보로 유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젊은(60세) 유색 인종(아프리카·아시아계) 여성이다. 대권 경쟁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민주당에 활기… “초접전” 이구동성

기세등등하던 공화당은 혼란에 빠지고, 패색 짙던 민주당은 기사회생한 분위기다.

미국 대선 판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치학자 8명과 역사학자 2명 등 미국 선거 전문가 10명에게 물었다.

본국 한국일보의 이메일·화상·전화 인터뷰에서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기울었던 선거가 바야흐로 초접전 양상을 되찾았다고 진단하며, 각자 지지층을 얼마나 결집시킬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의 격전지 흑인·여성 동원력이 대선 결과를 좌우하리라는 게 공통된 관측이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을 시작으로 10명 중 9명의 당선자를 맞힌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역사학)는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다봤다.

릭트먼 교수는 자신의 대선 결과 예측 모형 ‘백악관행 13개 열쇠’를 활용해 높은 적중률을 보여 왔는데, 13개 중 6개의 열쇠를 잃으면 집권 여당 패배로 귀결된다는 게 핵심이다.

일석이조 ‘해리스 효과’

이에 대입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현직 후보(Incumbency)’ 열쇠를 잃었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큰 혼선 없이 구심 자리를 차지하며 ‘무(無)경선(Party Contest)’ 열쇠를 지켜 냈고, 결과적으로 △현직 △‘집권당 입지(Mandate·하원 소수당 전락)’ △‘전 국민에게 인기 있는 현직 대통령(Incumbent Charisma)’ 등 총 3개 열쇠 상실 정도로 방어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는 공화당에 호재였다. ‘밉상’이던 당 후보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명예교수(정치학)는 “공화당원들만 흥분했다”고 짚었다.

수명도 짧았다. 마크 존스 라이스대 교수(정치학)는 “바이든 사퇴가 언론·대중의 관심을 금세 가져갔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TV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 약점을 온 국민에게 노출한 뒤 민주당은 대선 승산을 따지기조차 힘든 처지였다.

존 기어 밴더빌트대 교수(정치학)는 “트럼프 승리가 유력하던 게임이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일석이조였다. 일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의 리스크였던 고령이 본인 약점이 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나며 역대 최고령 대선 출마 후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됐다.

슈미트 교수는 “이제 연설마다 실수를 연발할 노인은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못마땅하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게 투표 동기를 부여한 것도 ‘해리스 효과’다.

‘정체성 정치’의 유혹

존 마일스 콜먼 버지니아대 정치센터 사이트 ‘서배토의 크리스털볼’ 부편집장은 “바이든의 여론조사 부진은 민주당 지지 기반인 청년층·소수자의 동원에 고전했기 때문”이라며 “해리스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래리 제이콥스 미네소타대 교수(정치학)도 “바이든 출마 때보다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것은 의회 선거 출마자에게도 기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박빙 승부로의 복귀다. 브라이언 게인스 어배너-섐페인 일리노이대 교수(정치학)는 “어떤 상승세도 거대하거나 영구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랜트 리허 시러큐스대 교수(정치학)는 “양극화한 미국 정치 상황에서 특정 정당 레이블이 붙어 있는 한 후보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며 “등락 폭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선수가 바뀐 만큼 양당 전략도 그대로일 수는 없다.

존스 교수는 “민주당의 메시지 전략은 트럼프가 여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며 노동자와 빈곤층에 해로운 정책을 시행하리라는 비판에 (인종·성별 등을 내세워 지지를 구하는) ‘정체성 정치’를 결합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토머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교수(역사학)는 “민주당은 지지층 투표율 견인에 정체성 정치를 자주 활용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효과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리허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민주당이 정체성 이슈를 부각하며 자기 경제 형편이 최대 걱정거리인 백인 노동자층과 중산층 유권자, 불법 이민과 국경 보안을 염려하는 유권자 전반을 상대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정체성 정치로 타격을 입는 편은 공화당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지층 결집 관건… 중서부에 사활

콜먼 부편집장은 “(해리스가 흑인 여성이라 후보가 됐다는 식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호명 공세가 공화당 고위층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며 “트럼프의 인종·성차별적 공격이 부동층을 돌아서게 만들고 소수자·여성 유권자의 반대 투표를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화당은 어떻게든 해리스 부통령을 바이든 대통령과 연결시키려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제이콥스 교수는 “트럼프는 해리스에게 바이든 인기를 떨어뜨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불법 이민 급증에 연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해리스 부통령은 공화당의 임신중지(낙태)권 위협,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집중 부각할 것으로 예상됐다.

해리스 부통령이 임신중지권 강조로 얻으려는 효과는 젊은 여성들의 투표 참여다.

존스 교수는 “미국 선거는 갈수록 부동층 유권자 확보보다 각자 지지층을 투표소로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리허 교수도 “이번 선거는 설득력보다 투표율에 더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슈워츠 교수는 “해리스를 향한 청년층의 열광도 조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워낙 낮은 미국에서 보수층 투표율이 그나마 높은 만큼, 투표 호소는 늘 민주당 쪽이 간절하다.

코리 브렛슈나이더 브라운대 교수(정치학)는 “법원·의회의 전통적 견제 장치로는 트럼프 복귀가 부를 민주주의 파괴를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됐으니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게 민주당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특히 흑인 투표율은 민주당에 열세 지역 공략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제이콥스 교수는 “6개월 이상 트럼프 쪽으로 향하던 흑인과 라틴계 유권자들이 흑인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으로 돌아간다면 애리조나, 네바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처럼 공화당이 우세한 주(州)에서 승부가 알 수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양당이 사활을 거는 핵심 ‘경합주’는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중서부 ‘러스트 벨트’(오대호 인근 쇠락 공업지대) 3개 주다. 불리한 쪽은 민주당이다.

백인 노동자 계층이 많아 해리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미시간주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이 돌려세운 아랍계 유권자의 투표 참여 여부가 불확실하다.

존스 교수는 “3개 주 중 하나만 가져와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게인스 교수는 “펜실베이니아주가 핵심 승부처라 해리스가 ‘홈구장 이점’이라도 얻으려 조시 셔피로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은 당분간 오름세를 유지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23~25일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이달 초 6%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바이든 대통령-트럼프 전 대통령 격차를 2%포인트로 줄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조사(22~24일)에서도 바이든 후보 시절 8%포인트였던 차이를 2%포인트로 좁혔다.

다만 슈워츠 교수는 “8월 말까지 해리스가 여론조사 지지율 5~8%포인트를 앞서도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격차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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