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박정희와 ‘고졸’ 김대중,두 거장의 굴곡진 학창시절

일제 강점기였던 1920년대 대구은행 본점 전경. 일제가 대구를 낙동강 유역의 쌀 반출 중심지로 삼으면서 이 지역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들어서면서 상업도 발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통학교를 1등으로 마친 박정희와 김대중은 특성이 다른 중등과정 학교로 진학해 자신들의 미래를 준비해갔다. 대구와 목포라는 지역적 차이, 사범학교와 상업학교라는 특성은 뒷날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구는 조선조 말까지 경상 감영 소재지였지만 경상도에서 경주, 상주, 진주보다 작은 도시에 머물렀다. 그러나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경부선 철도와 낙동강 수운의 교차점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일제가 대구를 낙동강 유역의 쌀과 생사(生絲)를 모아 반출하는 중심지이자 경상도 지역의 행정, 관청의 중심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기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일본인 거주자가 많이 늘었다. 노동자 인구도 늘고 그에 따라 노동 운동 세력도 커져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다. 대구의 위상이 이렇게 커지자 일제는 육군 80연대를 주둔시켰는데, 박정희는 80연대의 훈련을 보고 군인의 꿈을 키웠다.

전라도의 목포는 군산과 함께 일제가 비옥한 호남평야의 쌀을 반출해 가는 거점으로 삼으면서 일제 강점기 조선의 7대 도시의 하나로 발돋움 했다. 해방 전 조선의 7대 도시는 경성부(서울), 부산부, 대구부, 인천부, 목포부, 마산부, 군산부의 순으로 규모가 컸다. ‘부(府)’는 일제가 자원 수탈과 행정 효율성 증대를 위해 도입한 행정단위이다.

목포의 원도심은 일제 강점기의 주택,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목포는 전라도 지역에서 수탈한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른 거점 도시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목포의 원도심은 일제 강점기의 주택,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목포는 전라도 지역에서 수탈한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른 거점 도시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대중의 기억에 따르면 1930년대의 목포는 날로 팽창하는 항구도시였다. 영산강 유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실은 숱한 배들이 영산강을 타고 내려와 짐을 부렸고, 여객선과 고기잡이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일제는 1914년 개통된 호남선으로 각지에서 수탈한 물자를 집산지 목포항으로 실어 날랐다. 이렇게 모아진 쌀, 목화, 해산물이 일본으로 실려 갔다.

목포는 일본 나가사키와 중국 상하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일찍부터 국제 무역의 거점으로 부상했다. 해외에서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니 자연스럽게 국제 정세에 관심이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김대중이 일찍부터 국제 정세에 눈을 뜨고, 서생적 문제의식에 덧붙여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했던 것은 당시 목포의 이런 면모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구미보통학교 1등 졸업생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에선 ‘꼴찌 그룹’

대구사범학교와 목포상업학교는 5년제 중등교육 과정이었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7년 차이를 두고 15세에서 20세의 인격 형성기에 이 과정을 거치면서 훗날을 위한 실력을 키웠다.

박정희는 1932년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3월에 졸업했다. 만주사변(1931년)으로 일제의 군국주의적 대륙침략 정책이 시작되고 중일전쟁(1937년)으로 확산되던 시기다. 침략전쟁 본격화로 병력자원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조선인을 완전히 일본인화 하여 전쟁 병력으로 쓰기 위해 민족말살 통치 및 황민화 정책을 폈다.

이런 상황은 박정희의 사범학교 생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범학교가 일제의 황민화 및 군국주의 공민 교육을 담당할 교사 양성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범학교 교육 내용도 체육과 예능 및 군대식 교육에 많은 시간이 배당되었고, 전교생 기숙사 제도를 도입했다. 사관학교에 가까운 교육 방식이었다.

붓글씨를 쓰는 박정희 대통령. 대구사범학교 시절 박정희의 일반 학과목 성적은 하위권이었으나, 서예에 능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붓글씨를 쓰는 박정희 대통령. 대구사범학교 시절 박정희의 일반 학과목 성적은 하위권이었으나, 서예에 능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미보통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박정희가 경쟁률이 높은 대구사범학교에 100명 중 51등으로 합격했다는 것은 앞선 연재에서 밝혔다. 그런데 박정희의 사범학교 성적은 5년 내내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다가 뒤늦게 밝혀진 성적표에 따르면 박정희의 사범학교 1학년 석차는 97명 중 60등, 2학년 때는 83명 중 47 등, 3학년 때는 74명 중 67등, 4학년 때는 73명 중 73등, 5학년 때는 70명 중 69등이었다(조갑제, ‘박정희 1’). 3학년부터는 사실상 꼴찌 그룹이었다.

박정희의 사범학교 성적이 나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결석이 많았다. 2학년 때 10일, 3학년 때 41일, 4학년 때 48일, 5학년 때는 41일이었다. 기숙사 비를 내지 못해 구미 고향집에 내려가 돈이 마련될 때까지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은 보통학교 때에 이어 사범학교 다닐 때도 박정희를 옥죄었다.

그래도 기말고사는 빼지 않고 치렀고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 낙제하지 않고 5년 만에 졸업을 했다. 일반 학과목에서는 꼴찌를 맴돌았으나 교련 시간에는 발군이었다. 교련주임 아리카와 게이이치(有川圭一) 중좌는 박정희를 예뻐하며, 총검술 시간엔 그를 시범조교로 불러내곤 했다. 박정희의 시범 동작은 직업군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3학년 때는 소대장에 임명되기도 했다(조갑제, 위의 책).

박정희는 검도, 육상, 사격 등 체육 과목도 뛰어났으며, 군악대에 들어가 나팔을 배워 능숙하게 불었다. 실기 과목인 음악 미술 과목도 열심히 해서 작사 작곡을 하고 풍금과 기타 같은 악기들도 다룰 줄 알았다. 서예에도 능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보통학교(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을 모두 배운 덕분이었다.

목포공립상업학교 수석 입학한 김대중, 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목포공립상업학교 학생 시절의 김대중. 현실은 암울했으나 꿈은 크고 이상은 높았다.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목포공립상업학교 학생 시절의 김대중. 현실은 암울했으나 꿈은 크고 이상은 높았다.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김대중은 1939년 4월 목포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12월에 졸업했다. 전시 특별조치로 4개월 조기졸업을 했다. 목포공립상업학교는 입학정원이 164명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반씩 뽑았다. 박정희가 다녔던 대구사범학교는 100명 정원에 일본인 학생이 10명이었는데 목포상업학교는 일본인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런 탓에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갈등과 충돌도 잦았다.

입학시험 1등으로 합격한 김대중은 취업반에 들어갔다. 입학 성적이 우수했음에도 취업반을 선택한 것은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이 어려워서였다. 1, 2학년 때는 급장을 맡았다. 암기력이 좋은 김대중은 역사 과목을 잘했다. 교사들로부터 일본 역사에 대해 일본인보다 훨씬 잘 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김대중은 3학년 때 대학 진학을 위해 진학반으로 옮겼다. 만주에 거주하던 집안의 큰형님 되는 분의 권유로 만주 건국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이 분은 목포에 왔을 때 만주 얘기를 해주었고, 김대중은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가서 세상을 크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만주 건국대학은 숙식부터 등록금까지 전액 무료여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진학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 벽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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